이요환 목사

선교사적인 삶

영국 선교사 레슬리 뉴비긴이 은퇴후 영국으로 돌아와 보니 자신을 파송했던 영국이 35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오히려 ‘선교대상국가’로 바뀌어져 있음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문을 더 많이 닫아가고, 성도의 숫자는 줄어갈 뿐만 아니라, 세속화의 물결로 영국 전체가 엄청난 영적 어두움에 사로 잡혀있는것을보게된것입니다.그때그는크리스챤으로서자기자신에대한 정체성(identity)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으면서 선교와 관련해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라는 새로운 교회에 관한 정체성을 내놓게 됩니다.

보통 우리는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를 향하여 ‘선교 중심적 교회’(mission focusing church)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교에 초점을 둔 교회’에서는 자 칫하면, 선교를 행하는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들로의 구분이 생길수도 있습니 다. 사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것은 잃어 버려진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라며 그런 삶의 목적을 명확하게 하셨습니다. 즉, 영혼구원하고 영혼을양육하는것,나의삶자체를선교와연관지을때,삶과선교(즉하나님 나라 건설)는 분리 되지 않습니다. 실제 선교 현장에 가서, 현지의 선교사님들을 보면, 작은 돈을 사용할 때도, 음식을 고를 때에도, 대화를 할 때도, 심지어는 길거리를 다닐 때도, 늘 ‘선교적 관점’에서 보고, 결정하는 것을 봅니다.

‘선교사적인 삶’이란 신앙인의 인생 목표와 실제 삶은 분리가 되지 않는 모습 을 말합니다. 선교 현장으로 달려가 그들과 함께하는 ‘선교적 삶’이 당연히 중요 한 사역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곳’에서 내가 ‘선교적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말과 행동, 목적과 실천이 함께 가는 진정으로 능력있는 크 리스챤의 삶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레슬리 뉴비긴 선교사님이 선교 35년후 자신을 파송한 영국을 보면서 받은 충격을 실은 우리들이 현재 같이 겪고 있습 니다. 지금 이 카나다 땅도 이미 선교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멀리 가지 못 한다면,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이 토론토 땅의 선교사로 파송하셨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스스로에게 말해 봅시다. “나도 이 땅의 선교사다!”

“3.1절과 기독인”

    “3.1절과 기독인”  

2019년 3월 3일, 이요환 목사 

 올해는 1919년 기미년 3.1 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고국을 떠나 이민생활을 하며, 종종 삼일절 기념주일예배를 드리며 조국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3.1운동은 나라와 주권과 2천만 동포의 생명과 우리의 역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민족적 저항이었습니다. 계층, 지역, 종교, 나이를 뛰어 넘어 한민족이 하나가 되어 비폭력 평화적 방법으로 조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투쟁이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지 9년 만에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선언된 ‘독립선언서’를 외치며 삼일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족대표 33인 중에 기독교계 지도자가 16인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은 약 20만명(총 인구의 1.3%)에 불과하였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역할이었습니다. 서슬이 퍼런 일본 경찰과 군부를 향하여 ‘죽으면 죽으리라’의 일사각오를 갖고, 조국 해방을 위해 항거할 수 있는 것은 ‘부활신앙’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삼일 만세 운동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한 짓처럼 보이고, 고난을 자초하는 일이며, 나아가 죽음까지도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난 뒤에 오는 주님의 평강을 소원하며 민족의 자결과 독립을 외치는 삼일 만세 운동에 온 교회가 적극 가담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교회의 적극적인 독립운동 주동으로 말미암아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고, 이후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박해가 시작되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신앙의 선배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한민국 조국이 되길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조국을 위해 더욱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